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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루기의 천재들> 책 내용, 역자, 생각, 구절

haffy 2023. 3. 3. 00:00

저는 자기계발서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너무 모범적이거나, 조금 진부하거나, 가끔은 따분할정도로 도덕적이기 때문입니다. 보통의 자기계발서에서는 시간은 금이고, 부지런함과 생산성의 효율은 현대사회의 미덕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미루기의 천재들>은 다릅니다. 작가 앤드루는 '미루는 행위'의 미덕을 역설합니다. 오늘은 <미루기의 천재들>의 책 내용, 역자소개, 읽고 난 후 느낀점, 기억에 남는 밑줄을 말해보겠습니다.

책 내용

앤드루 산텔라는 미루는 전문가입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자신의 미루는 습관을 심도 있게 들여다보며 '미루기를 위한 여행길'에 오릅니다. 그는 심리학자와 경제학자, 성직자, 철학자와 이야기를 나누며 미루기를 신체적, 정신적, 문화적 차원에서 조명하는 다양한 관점들을 만납니다. "게으른 게 아니라 창의적으로 바쁠 뿐입니다" 문학, 예술, 심리, 종교, 과학사를 넘나들며 길어 올린 미루는 사람들을 위한 강력한 변명입니다. 20년 동안 '진화론'의 발표를 뒤로 미루며 따개비와 지렁이 탐구에 매달렸던 찰스 다윈, 의뢰받은 지 25년 뒤에야 그림을 납품하여 세기의 명작 <암굴의 성모>를 남긴 레오나르드 다빈치, 8개월 동안 소포 보내기를 미루다가 인간의 비합리적 행동을 다루는 행동경제학의 대가가 된 조지 애컬로프, 심지어 성인 아우구스티누스조차도 순결을 달라고 기도하면서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옵고". 저자는 미루기의 심연 속에서 역사에 남을 위대한 성취를 탄생시킨 천재들의 이야기를 조명하며 미루기가 가진 아이러니한 본질에 다가갑니다.

역자

앤드루 산텔라(Andrew Santella)는 미국의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입니다. 시카고 로욜라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습니다.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역사책을 70여 권 펴냈으며, 현재 <지큐>, <뉴욕타임스 북리뷰>, <슬레이트> 등에 글을 기고하는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뉴욕 브루클린에 살고 있는 앤드루 산텔라는 지금 이 순간에도 무언가 중요한 일을 미루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생각

자기계발서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저의 취향과 작가의 생각이 비슷해서일까요. 이 책을 읽으면서 공감의 웃음을 짓기도 하고 작가 특유의 자조적인 유머에 밑줄을 치기도 했습니다. "스톱워치를 들고 셀프 사보타주 중인 나"(134p)라던지 "내가 하는 일을, 내가 했을 수도 있는 일이나 아직 하지 않은 일과 비교하면서 늘상 일존의 실존적 계산을 한다"(32p)라는 구절이라던지 말입니다. 미루는 행위의 순기능을 자조적인 독백과 함께 유머러스하게 풀어내는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평소 미루기의 달인이였던 저의 숨겨진 죄책감이 정당화됨을 느낌과 동시에 깊게 생각하지 않았던 미루는 행위 속 저의 이면을 생각했습니다. 자멸적 행동을 유발하는 나의 금요일 오후 3시 일터에서의 미루기는 완벽주의자의 꾸물거림일지도 부담스러운 행동에 대한 회피일지도 가짜 통제감을 느끼게 해주는 심리적 효용을 위함일지도 상급자에 대한 반항일지도 혹은, 우울에서 나오는 망설임, 현재에 대한 선호일지도 자기 인정과 자기 미화의 판타지일수도 있습니다. 확실한건 '미루는 행위' 후에 레오나르드 다빈치는 '암굴의 성모'를 남겼고 찰스 다윈은 '종의 기원'을 발표했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창의적으로 바쁘지만 당신과 나는 결국은 해야할 일을 마치겠지요. 작가의 말처럼 우리 모두는 특정 종류의 애매모호함을 필요로 합니다. 그 방식이 더 매력적입니다. 당신과 내가 여태까지 그래왔던것처럼

구절

p102. 리스트가 카오스와도 같은 우리의 삶을 정리하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내가 리스트를 만드는 건 일을 해치우는 것과 전혀 관계가 없다. 정확히 그 반대다. 나는 리스트를 작성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성취로 느껴지기 때문에, 그러므로 리스트에 적어둔 목표를 성취해야 할 책임에서 자유로워지는 것 같기 때문에 리스트를 좋아한다. 리스트 만들기, 리스트 붙여놓기, 리스트 잃어버리기, 잃어버린 리스트를 찾아서 오후 시간 보내기, 전부 리스트에 있는 일을 실제로 끝내는 데 쓸 수도 있었을 시간이다. 이게 바로 그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투두 리스트에 중독되는 이유 중 하나다. 또 다른 이유는 해치워야 할 일의 리스트를 작성하는 게 리스트에 있는 일을 실제로 해치우는 것보다 저 만족스러울 때가 많다는 점이다. 원래 의무에 이름을 붙이는 게 의무를 다하는 것보다 훨씬 재미난법 아닌가.
p186. 같은 길을 뱅글뱅글 돌면서, 나는 감상에 푹 젖어 미루기란 일종의 상실이 아닌가 생각했다. 미루는 시간 차원에서 방향감각을 상실하는 것이다. 어쨌든 나는 공간 차원에서 방향감각을 상실한 상태였지만 말이다. 그랬다. 문자 그대로 진짜 길을 잃어버렸다. 내 생각에 미루는 것과 길을 잃고 헤메는 것의 차이는, 일을 미루는 사람은 방향감각을 상실하기로 직접 선택한다는 점이다. 미루기는 일종의 시간 여행이며, 해야 할 활동을 구체적인 현실에서 추상적인 미래로 넘겨버림으로써 시간을 조작하려는 시도다.